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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rang과 김산 그리고 김단야“김천은 김단야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9.04.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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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업 (김천황악신문 代表)

봄비가 밤에는 세차게 그리고 새벽에는 나직이 대지를 적셨다. 새벽까지 시의회에서 받아온 소책자“김천의 독립운동 그리고 운동가들”을 읽어보았다. 아침에 출근해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나윤선의 아리랑을 들었다.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읽었던 미국의 신문기자이자 시인이며 저널리스트인 님 웨일즈 (Nym Wales.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 Helen Foster Snow 1907~1997)가 쓴 아리랑(Song of Arirang)의 김산이 생각났다. 김산이 사랑한 노래 아리랑도 비슷했을 것이다.

김산(金山, 1905년 ~ 1938년 10월 19일)은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항일독립투사이며 아나키스트로 본명은 장지학(張志鶴)혹은 장지락(張志樂)이다. 만주, 일본, 북경, 광동 등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938년 일제의 스파이란 누명을 쓰고 중국에서 처형당했다.

김천출신의 김단야(金丹冶, 1899년 1월 16일 ~ 1938년 2월 13일.본명 김태연)는 일제 강점기 해외에서 주로 활동했던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다. 1920년대 박헌영,임원근과 더불어 삼인당(三人黨)이라고 불리면서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1937년 11월 일제의 밀정이란 혐의를 받고 소련 내무인민위원부 경찰에 체포되었고 소련 인민재판소는 김단야에게 “일제 첩보기관의 밀정이며 반혁명폭동과 반혁명테러활동을 목적으로 한 조직의 지도자로서 1급 범죄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단야는 어떤 변호도 받지 못한 채 이듬해 1938년 2월 13일에 처형당했다. 2005년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복권되었다. 본명은 김태연(金泰淵)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공산주의에 심취했고 주로  해외에서 독립투쟁을 전개하다 자신이 몸담았던 공산주의 당국에 의해 “일제의 스파이”로 몰려 각각 중국과 소련에서 처형됐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1938년에 처형되었고 그당시  나이 30대였다.

그들의 삶은 치열했다. 현대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고난의 길을 걸었다. 1920-30년대의 지식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상적 지향지는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3.1운동의 좌절로 아나키스트를 거쳐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었기에 현재의 시각으로 사회주의자 계열의 독립운동가를 폄하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국가보훈처도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을 복권하고 서훈을 수여하고 있다.

 얼마 전 벌어진 손혜원 의원 부친의 경우와는 다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지만 북한의 정권수립에 깊숙이 관여하고 6.25전쟁을 비롯해 남한에 적대적 행위를 한 사람들까지 훈장을 수여하거나 복권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그것은 더 많은 토론과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 김천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김단야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들은 얘기로는 김단야의 후손이 구미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만나보고 싶다. 김단야는 김천이 낳은 걸출한 인물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는 극적인 요소를 가진 인물이다.

하나 우려스러운 일은 김단야를 진영논리로 재단해서 독점하려는 세력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다. 杞憂라면 좋겠지만 사드판에서 만난 김천의 좌파들은 너무나 그 수준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때 묻고 곰팡이 핀 7-80년대 낡은 이념에 매몰되어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아둔함, 비논리적이고 목소리만 큰 무식함, 외부세력과의 연대에만 치중해 대중에게서 격리되어 스스로 고립되는 비확장성과 불통,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온갖 유언비어로 도배해서 敵으로 만들어 처단하는 행태는 1938년 중국공산당과 소련당국이 김산과 김단야를 “일본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바람과 공기가 너무 좋은날 난 소망한다. 김단야를 매개로 김천의 좌우가 조그만 접점을 찾을 수 있기를 말이다. 역전에서 만난 교육자,종교가,각종 활동가의 모습을 한 좌파들 중에 시대적 후진성과 아집에서 벗어나 제발 열린 가슴과 진실만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1-2명의 사람이라도 나와서  손잡고 김천이 낳은  독립운동가 김단야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다면 미래 김천의 후손들에게 먼저 산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했다고 본다.

 

#김천황악신문 #김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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