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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IB PYP-MYP-DP 와 <영어를 포기한 우리 청소년들> 속편대한민국 교육의 혁명을 바란다.
  • 김천황악신문
  • 승인 2018.08.1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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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 & IGCSE 국제교육 배기성 대표

*IB는 International Baccalaureate의 약칭입니다.

*IGCSE는 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의 약칭입니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라는 팝송 가사가 있다. 토니 베넷이라는 미국 가수가 불러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고, 멜로디만 들어도 우리나라사람들도 알아들을 만큼 매우 친숙하다. 저 노래를 번역해보자,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두고 왔어요. 그 높은 샌프란시스코의 언덕들처럼 그 마음이 내게 다가오네요.” 라고 일단 번역할 수 있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만약 영어교사나 학원선생이 저렇게 적어주면, 모든 학생들이 기계처럼 따라 외워버린다. 좀 더 보충의견 있다는 식으로 손을 자꾸 들기 시작하면 그 학생은 모두에게 “매우 귀찮은” 존재가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그 언덕처럼 높디높은 사랑하는 마음. 오늘따라 너무나 내게 생각나는군요.” 라든지, “샌프란시스코에 남겨둔 오늘따라 보고 싶은 내 사랑, 언덕 위에 높이 올라가면 볼 수 있나요?” 이런 식으로 의역해서 번역하면 안 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노래도 토니베넷의 그 아련한 목소리로 하는 창법도 있지만, 그날그날의 학생 기분에 따라 흥얼거리면 그뿐이다. 무조건 단 하나의 단일해석! 모범답안! 을 강요하는 그 객관식 시험의 풍조는 결국 지난 회에서 언급했다시피, [영포자]라는 우리 시대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낳고 말았다. 말하기 글쓰기 교육이라는 것이 달리 특별한 교수기법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얼마나 학생 개개인 하나하나의 개성과 사고방식에 교사가 귀를 기울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을 뿐이다.

정답을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틀렸다고 해버리는 이진법적인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가? 컴퓨터에만 이진법이 있는 게 아니다. 즉 누르면 1이고 놔두면 0인 세상, 답안지에 맞춰보고 들어맞으면 1이고 아니면 무조건 0인 세상을 우리 학생들에게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강요해놓고, 어떻게 그들이 성인이 되는 19살부터 갑자기 10진법적인 세상 즉 0에서부터 9까지 다양함을 추구하는 세계의 아이디어를 내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더구나 19살이 되면, 한국에서는 토익이라는 혹은 토플이라는 또 다른 객관식 시험을 대학교 및 전문대의 자기 전공과는 아무 관련 없이 공부해야 한다. 일체의 해석을 허락하지 않고, ‘공식정답’만을 청소년들의 미래를 담보 잡아 요구하는 세상이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활동한 오스트리아 유대계 언어철학자였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I love you.”라는 단순한 문장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주어 I에 강조점을 둘 경우, “너를 사랑하는 것은 저 남자가 아니라, 바로 나야!” 라는 뜻이고, 동사 love 에 강조점을 둘 경우, “나는 널 싫어하지 않아, 사랑하고 있어.”라는 뜻이며, 목적어 you에 강조점을 둘 경우, “내가 사랑하는 것은 저 여자가 아니라 바로 너야!” 라고 뜻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1930년대 당시에 약 70년동안 스위스의 소쉬르 나 프랑스의 플로베르 같은 언어학자들이 거의 모범답안 수준으로 격상시켰던, 소위 ‘일물(一物)일어(一語)설-논리적이건 사회적이건 무조건 한 단어, 한 문장에는 단 하나의 의미밖에 없다.-’라는 학설을 정면으로 배격한 것이고,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명저 『논리철학논고』의 첫 문장을 “이 세상의 언어는 실제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라는 명언으로 시작하게 된다. 즉 실제생활의 언어가 학계에서 주장하는 언어 보다 훨씬 풍부하다는 것을 선언한 의미가 크다.

모든 과목이 그러하지만, 특히 영어는 우리 청소년들이 전 세계를 쳐다보는 시야를 확 틔워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 영어를 공부함으로써, 드넓은 세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나가야 한다. 얼마나 기회가 많은지, 얼마나 많은 다양한 종류의 직업들이 있는지, 등을 이 교과목을 통해 배워야 한다. 우리의 중고등학교 영어수업이 정녕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가? 우리 청소년들이 도대체 왜 영어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가? 왜 학교와 국가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학생들을 등수서열세우기에 팔짱끼고 바라보고만 있는가?

#김천황악신문 #  IB & IGCSE 국제교육 배기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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