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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山寺) 예찬(禮讚)
  • 강미숙 기자
  • 승인 2024.05.20 10:11
  • 댓글 1
이영구 증산면 산업팀장/황악신문 DB

오월 초파일을 앞둔 이른 아침 청암사를 찾았다.

사하촌(寺下村)의 수도암과 갈래길을 지나고 불령동천 산모퉁이 돌아 길 여백에 차를 멈추고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어느 아담한 시골집 담장 안을 둘러보듯이 사바(娑婆) 밖을 살며시 걸어 들어가 본다. 큰 그늘 사이로 부처님이 뿌려주는 햇살에 보잘 것 없는 육신을 의지한 채 청아한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숲을 따라 걷는 길은 그야말로 힐링 로드다.

바위틈 사이로 쉼 없이 흘러내리는 물은 속세 찌든 때를 남김없이 씻겨 내리는 듯 하고 어느새 난 물아일체가 되어 내 몸이 자연 속으로 쏘옥 빨려 들어가 포근히 감싸지는 피안의 세계에 이른다.

하늘을 찌를 듯 장승처럼 자라난 소나무 두 그루가 마치 일주문처럼 버티고 서있어 불령(佛靈)스럽기도 하여 가지 끝 뻗어있는 곳까지 멍하니 올려다 보고 걷노라니 어느 듯 아담한 주차장이 나타나고 가드레일 왼편아래 머리만 쏙 내민 비스듬한 바윗돌엔 북어국 백반체 같은 글씨로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과 밀가루 반죽위에 구슬 굴러가듯 담백하게 눌러쓴 ‘靑巖寺院`(청암사원)은 왠지 많이 들어 본 듯하고 말해본 느낌이 가득한 채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마주한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무들이 저마다 길고 굵게 혹은 등이 휠 때로 휜 채로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 마치 부처님의 한없는 가피 속에서 아주 느린 걸음을 하고 시공간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호계(虎溪), 세진암(洗塵巖), 여산폭포(廬山瀑布) 등 유·불·선 경계를 넘나드는 글 사이로 저마다 인연의 깊이와 무게를 간직한 석각들이 새겨져 있고 여산교(廬山橋) 아래, 마치 녹색 모포를 포근히 둘러싼 이끼낀 바위 속살을 만난다. 아마도 도선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청암(靑巖)이라 하지 않았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세월의 무게에 힘이 부쳐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돌계단을 하나씩 오르면 크기에서건, 색의 선명도에서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방향으로 지어진 듯한 전각들이 하나둘 나타나고다리를 건너 대웅전이 올려다 보이는 그늘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왠지 모르게 차분해 보이는 선방, 독경소리, 풍경소리 들리지 않는 정막감에 산새소리 울림만이 유일하다.

바람, 새소리도 법문일 것이다.

풍경도 동선도 절제된 듯한 산사의 아침은

한적하고 정갈하고 평화롭다.

건너왔던 다리를 다시 건너 올라왔던 돌계단을 발아래 두고 산을 가르고 낸 오솔길을 따라 해우소 지나 부도탑에 이르고 이내 극락전, 보광전을 향해 감나무 아래 난 허연 이끼꽃 핀 돌담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옛길 속을 들어가 본다.

대문이 있는 어느 양반가 한옥 같은 목조건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폐비가 임금의 부름을 애타게 기다리다 한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은거하던 극락전, 왕후를 배려해서 지어진 반가양식 건물은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진다.

극락전 앞 채마밭엔 온갖 채소들과 무궁화, 수국, 작약과 엉겅퀴와 함께 벌과 나비, 새들이 마치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알듯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날고 있는 듯하다.

산사엔 많이 훼손되었거나 새로 건축하느라 손길이 많이 간 느낌이 별로 없다. 흠이 나면 그곳만 도려내 다시 끼우기를 반복하며 오랜 역사와 함께 켜켜이 쌓아온 세월의 흔적, 전각의 문양들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고찰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푸른 이끼 가득한 기와 위에 피어난 풀꽃처럼 오랜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다시 내려오며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는 산사,

노송을 타고 역사를 쥐면 천년학은 아마도 피울음을 토할 것이다.

옛것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전해져오는 오월의 산사는 한국미학의 정수를 온전히 간직한 채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황악신문 #청암사

강미숙 기자  apata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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