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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 강호마을 300살 왕버들...“甘川과 함께 한 긴 세월 ”[김천의 나무를 찾아서 16]
  •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 승인 2022.09.0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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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 강호마을 300살 왕버들

김천에는 甘川이라는 내가 흐르고 있다. 말이 내지 강이라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한자로 달감(甘)자를 쓰서 단내(川)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다. 

감천의 감은 단군왕검의 검을 한자로 차용한 것이다. 성스러운 내란 의미다.

이 감천을 경계로 감문과 아포가 마주보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감문국과 아포국이 대립하기도 했다. 역사서에 감문국과 아포국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아포가 배반을 해서 대군 30명을 일으켜 밤에 감천을 건너다가 물이 불어나 되돌아왔다(牙浦叛大發三十夜渡甘川水見漲而退)”는 것이다.

아포의 지리(智里)는 조선시대 말에 개령현 아포면에 속했다. 보신,송변,양산,강호마을이 있다가 1971년 보신,송변이 지1리,양산,강호가 지2리로 분동했다.

강호마을 왕버들의 여름
강호마을 왕버들의 겨울

 강호란 마을은 옆으로는 성스러운 강 감천이 흐르고, 앞에는 호수가 있어 이름을 강호(江湖)라 했다. 마치 무협소설에 나오는 이름 같다.

강호마을은 빙고산을 경계로 공쌍마을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영조4년(1728년) 파평 윤씨가 선산 고아에서 이거하고  후에 김해 김씨,남양 홍씨,밀양 박씨,창녕 조씨가 이주해서 동네가 커졌다.

강호마을은 아포와 감문을 연결하는 감포교라는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 다닐 정도록 낙후된 곳이었다. 이 다리를 섶다리라 불렀는데 수십 년 전까지 감천변에 주막이 있었고 섶다리 사용료로 여름에 보리 한말,가을에 벼 한말을 받았다.

오지중에 오지였던 곳이지만 지금은 감천변과 황소마을 건너편으로 진입하는 두 개의 길이 있다.

강호마을 왕버들의 여름
강호마을 왕버들의 겨울

 이 동네에 들어서면 기나긴 세월을 품은 왕버들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겨울에 처음 만났을 때의 상태는 심각해 봄에 싹이 돋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반쯤은 썩은 몸뚱이에 덕지덕지 합성수지로 덮어놨지만 그것마져  떨어져 깊이 썩어가고 있었다.

한 때는 이 동네를 대표하는 명물이었고, 동네를 알리는 표식이었으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휴식을 제공하던 몸이었지만 지금은 생존을 걱정할 지경이다.

여름 볕이 한창 뜨거운 날 강호마을을 다시 찾았다. 동네입구에는 할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화투를 치다가 낯선 차가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카메라를 꺼내자 화투판을 덮고 바라보던 한 할머니가 “잡으러 왔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본 시골 노인들이 화투치며 노는 모습이 정겨워 사진 한 장 찍으려던 것이 쓸데없는 오해를 산 것이다.

서둘러 왕버들로 발길을 돌려 살펴보니 걱정과는 달리 싱싱한 잎사귀가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한 것처럼 보였다. 노거수들의 생존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들판에서 만난 어떤 느티나무는 원래 몸의 1/20밖에 남지 않아도 가지에 잎을 틔워내니 그 생명력은 얼마나 대단한가? 그 힘이 놀라울 뿐이다.

강호마을 충의사(忠毅社)

강호마을에는 동래 정씨 래성군(萊城君) 충의공(忠毅公) 정기원 선생을 모신 사당인 충의사(忠毅社)가 있다. 헌성비(獻誠碑)에는 "임진왜란 때 두 번이나 명나라에 청병하여 승리로 이끌고 정유재란 때 순국한 래성군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아 참되 후손이 되겠다"는 후손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이 사당을 지키고 있는 후손인 동래정씨 34세 정석균(57)씨를 만나 왕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약 10년 전까지만 해도 왕버들이 매우 싱싱했다. 왕버들 주위는 원래 평평한 흙이었는데 도로포장을 하면서 콘크리트로 주위를 다 덮어 버려 樹勢가 약해졌다. 나무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시멘트를 걷어내고 시청에서 수액을 주사해 살긴 했는데 회복이 매우 더디다는 것이다.

정 씨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을 집에서 가지고 와 보여줬다. 사진 속의 나무는 가지를 하늘과 양 옆으로 뻗은 당당한 모습이었다.

가지위에는 까치집이 있는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와 다름 없었다. 현재의 모습과 비교하니 너무나 참담하다,

정 씨는 자신도 이  나무를 좋아해 왕버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했다. 어른들이 쉬는 모습도 찍고 산에서도 찍고 다양한 각도로 많이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5~6년간 관리를 하고 있지만 잘 깨어나지(회복)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자신이 알기로 나무에 제사를 지낸 적은 없다고 하는 걸 보니 당산나무는 아닌 듯 했다.

강호마을 300살 왕버들의 여름
강호마을 왕버들의 겨울

 왕버들 노거수는 느티나무 다음으로 많이 남아 있는 수종이다. 낙동강 중.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경북에 많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 왕버들 군은 성주군 성밖숲에  60여 그루가  천연기념물 403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김천 개령 앞 감천변에는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있어 학생들의 소풍장소로 사랑받았다. 현재는 냇가에는  한 그루도 없고 동부연당 근처에 몇 그루가 남아 있다.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지고 나면 다시 또 앙상하고 가여운 모습으로 돌아갈 왕버들을 보기 힘겨워 내년 여름에 다시 찾아 와 볼 생각이다.

마을을 개척할 때 후손들이 잘되라고 심은 왕버들의 나이는 벌써 300살이 되었고, 목이 잘리고 몸통은 썩어가고 있어 얼마나 더 살아갈수 있을지 기약은 없어 보인다.

어렵게 찾은 왕버들에게 마음속으로 짧은 편지 한 장 보내고 발걸음 돌려 다시 뵈올날을 기약해 본다.

강호마을 왕버들의 10년전 모습

“한참을 헤메다 만신창이 두 손으로 만세 부르고 계신 버들님을 뵈었네

몸은 썩어 참새들의 집으로 내어주고

아직 창창한 300살 청년인데 세상일 아스라이 잊혀져 가네.

겨울을 재촉하며  짧아지는 해 벌써 뉘엇뉘엇

언제 다시 뵈올지 기약없네

서러워 마소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100년을 못 살거늘

사시는 그날까지 平安하소서“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이갑희(경북 향토사연구회 회장역임,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국학진흥원자문위원)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시)

김천의 마을과 전설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

카메라와 함께한 나무산책

경북의 노거수

노거수와 마을숲

노거수 생태와 문화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김천의 나무#강호 300살 왕버들님

영남스토리텔링연구원  ksu38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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